마가복음 5장 35절-43절
유대교의 지도자 중에 한 사람 야이로는 회당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느 날 그의 딸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아버지로서의 야이로는 얼마나 가슴이 메어지고 힘들었을 까요?
자신의 신분이 회당장이라는 사회적 지위의 체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딸을 살리는 것 이었습니다.
이런 일로 이하여 유대주의자들로 하여금 무슨 봉변과 수모를 받을지도 모르는 야이로는 딸을 살려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간 이유는 많은 병든 자들이 치유되고 귀신의 압박에서 해방되는 모습을 옆에서 체험을 한 것입니다.
처째로 믿음의 세계를 바라본 야이로가 딸을 구원했습니다.
예수님 앞에 달려간 그는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가는 시간이 매우 길고 숨가픈 상황일 것 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열두 해를 출혈 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갑자기 뛰어들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므로 치유를 받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일로 예수님에 대한 신뢰는 더욱 커지고 믿음이 생기지만 시간의 촉박함으로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사람은 매우 원망스러웠을 지 모릅니다.
빨리 달려 가야 하는데!
일분이 급한데!
지체할 겨를이 없는데!
드디어 회장당의 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 당신의 딸이 죽었어요"
"예수님 모시고 올 필요 없어요!"
아버지 야이로의 심장이 어찌 되었을까? 한번 상상 해 봅시다.
옆에 서있던 예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고 있는 것이다. 두려워 말고 믿어라"
예수께서 하신 이 말이 실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설득력이 있을까요?
그리고 믿고 따를까요?
진실로 정확한 하나의 현실은 딸이 죽은 것 입니다.
실제는 딸이 죽어서 자신의 기대와 수고가 다 끝났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잠잔다고 하는 것 입니다.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믿으라고 하십니다.
이와 똑 같은 갈등의 현상이 우리의 삶의 현장에 매일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그 중에 우리는 야이로 처럼 무엇인가 하나를 선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살아있는 실존의 경험입니다.
다행이 야이로는 죽음의 현실을 그대로 인정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현실의 실제를 뛰어넘어 믿음의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제물로 바치는 아들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고 믿음의 세계를 바라보며 순종하는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 도단에서 아람군대의 포위가 되어서 두려워 떨고 있는 게하시 보고 근 군대를 포위한 하나님나라의 불 병거와 불 말을 보라고 말한 엘리사 처럼 말입니다.
우리 ICM 가족들은 첫째로 현실의 암울한 불확실성과 좌절 그리고 공포와 죽음의 도전 앞에서 그 현실만 보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의 눈으로 믿음의 세계를 바라보는 야이로가 되기를 기도 합니다.
둘째로 주님께서 일어나라 하십니다.
죽은 시체 위에 손을 언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이 오른손이 오늘 우리의 가슴에 만져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달리다굼" 일어나라 하십니다.
우리의 죽은 꿈이 살아나고, 죽은 믿음이 살아나, 죽어버린 하나님의 사랑과 열정이 살아나고,
죽어버린 가정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터치가 살아나고, 오늘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이 새로운 기적을 베푸실 것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살아나시기를 기도 합니다.
아멘
김만홍 목사